욥기 6:1~30
욥은 고통의 무게가 너무 크고 원통한 심정으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원하는 것은 차라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여 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곁에 있어주기만을 기대했는데 친구들은 함께 하기보다 두려워하고 겁을 낸다고 말합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자신의 말에 틀린 부분이 있는지, 선악을 분간하지 못하는지 말해 달라고 항변합니다.
욥은 그가 받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차라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여 주시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고통이 너무 극심하면 누구나 욥과 같은 고백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이
14절에서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힘들때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동정을 받을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위로와 동정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특히 고통 가운데 있을 때가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욥이 고백한 앞부분을 너무나 강조합니다. 전능자를 경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중요합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크지 않을때가 대부분입니다.
위대한 순교자와 같이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이 극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할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 아닙니까? 그와 같은 믿음도 하나님이 주셔야만 가질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믿음을 판단하기 보다 서로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너무 믿음을 앞세워서 남을 판단하는 일이 우선이 되면 안되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그간 남이 고난을 겪을 때 내 속으로 얼마나 많은 판단을 했는지 생각났습니다. 상대방의 믿음을 판단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앞으로 판단하지 말고 고통당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고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 나에게는 평소에 동정해 주는 친구가 있습니까? 오늘 내가 동정해 주어야 할 친구는 누구입니까?
(기도제목)
- 넘치는교회가 이웃을 사랑하고 동정하고 품는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나에게 동정하고 긍휼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풍성하게 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