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5:1~27
엘라바스가 계속해서 욥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분노와 멸망의 재난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런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이 복이고, 징계 받을 때에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엘리바스의 주장을 보십시오.
2절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욥에게 이 말을 왜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엘리바스의 마음 속에는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이 미련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8절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고난 당한 욥에게 자신의 입장을 말합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훈계하는 투의 말입니다.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친구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다는 말은 교만입니다. 로마서 3: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을 만큼 우리가 의인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 힘으로 하나님을 찾겠다는 말은 교만입니다.
17절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다고 단정합니다. 우리는 욥기 1장을 통해 욥이 하나님께 잘못을 해서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엘리바스와 욥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데,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징계라고 단정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우리는 남의 고난에 대해 쉽게 징계라고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27절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엘리바스는 하나님에 대해 연구한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권면합니다. 이것 또한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구해서 알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안만으로는 우주의 끝을 볼수 없고 세포를 볼수 없듯이, 우리의 생각과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만큼, 말씀해 주시는 만큼만 알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만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지극히 작은 앎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고난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작고 부분적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섣불리 충고나 조언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보다 함께 함으로 위로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Q. 내가 힘들때 나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해 준 위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나는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충고와 조언하는 편입니까?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편입니까?
(기도제목)
- 넘치는교회가 이웃의 아픔에 대해 말로 충고하고 조언하기 보다 먼저 이해하고 공감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예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해 주셔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