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27~38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데 두 맹인이 따라오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 지르자 그 믿음을 보시고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십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십니다.
28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32절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오늘 본문에는 두 맹인이 눈을 뜨게 되고,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이 귀신이 떠나고 말하게 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치료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악한 귀신이나 내면을 점령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와 같은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일어날까요?
어떤 사람은 일어난다고 믿고, 어떤 사람은 못 믿을 것입니다.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도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지식적으로만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믿음을 말할 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은 지적인 동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맹인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분명한 고백을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바로 반응하지 않으시고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에 두 맹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로 따라 나아갔습니다.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도 누군가가 그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믿음은 지적인 동의에 그치면 안됩니다. 반드시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나의 간절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이면 감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온전히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뭐라해도 개의치 않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과 삶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동하고 믿음으로 살아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를 경험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Q. 나의 믿음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만 해당하는 믿음은 아닙니까? 믿음이 내 삶에 역사하여 놀라운 일을 경험한 적이 언제였습니까?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의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나게 해 주옵소서. 지적인 동의나 천국 가는 것에 만족하는 믿음이 아니라, 삶에 역사가 일어나고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믿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을 더 알고 신뢰하기 원합니다. 믿음이 커지게 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인내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